외교부, 법률가대회 일본 대표 구양옥 변호사에 ‘한국’ 국적표시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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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양옥 변호사 | 재일동포 3세 구양옥 변호사(29·사진)는 일본 국적도, 한국 국적도 아닌 조선적(朝鮮籍)이다. 오사카에서 활동하는 그는 오는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24회 로아시아(LawAsia)총회에 일본변호사협회 대표로 참여할 예정이다. 로아시아총회는 1966년 8월 창립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표적 법률가 대회다. 구 변호사는 한국 방문을 위해 최근 오사카 주재 한국 영사관을 찾았다. 정부는 영사관에서 이들의 입국 신청을 심사한 뒤 외국 거주 동포용 여행증명서 발급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영사는 구 변호사가 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서울에 가고 싶으면 일본 지자체가 발행한 외국인등록증의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라고 했다. 본적이 경북 달성인 구 변호사의 조부모는 일제강점기에 건너와 이와테현에서 광산노동자로 일했다. 1947년 일본이 외국인등록법을 만들어 조선인 차별을 시작했지만 구 변호사의 조부모와 부모는 귀화하지 않았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외국인등록증에 한국 표시가 가능해졌을 때도 조선적을 유지했다. 조국이 분단된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국적을 택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구 변호사도 이 같은 어른들의 뜻을 따랐다. 조선적은 일본에서 사실상 무국적자에 해당한다. 그는 이런 신분상의 한계를 딛고 2008년 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하지만 한국 땅을 밟기 위해 일본도 아닌 한국 정부로부터 조선적 포기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현행 여권법은 국적을 ‘가족관계등록부(과거 호적)’에 따라 판단한다. 대법원 예규에는 조선적의 경우 가족관계등록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따라서 조선적은 원천적으로 한국 국민이다. 가족관계등록부만 정리하면 곧바로 여권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여권 발급을 위해 구 변호사에게 재외국민등록을 요구했다. 일본 동포는 일본 지자체가 발행한 외국인등록증의 국적을 한국으로 바꿔와야 재외국민등록을 받아준다. 결국 한국 정부가 자기 나라 국민의 증명을 일본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일본 변호사인 김철민 씨는 “한국 정부가 자신의 국민을 확정하는 데 일본의 인증이 필요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영사관에서 재외국민 가등록을 해준 다음 외국인등록증을 고쳐와야 본 등록을 해주는 것은 이런 모순 때문”이라고 말했다. 2008년 일본 최고 학부 출신으로 도쿄의 유명 로펌에 근무하던 한 조선적 변호사는 한국에서 과태료를 내고 출생신고를 했다. 법률적으로 검토해보니 가족관계등록부만 되살리면 여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쿄 주재 한국 영사관은 여권을 주지 않았고 결국 그 변호사는 외국인등록증의 국적 표시를 바꿔 재외국민등록을 하고, 한국 여권을 받았다. 구 변호사는 지난 23일 영사관을 다시 찾아 로아시아 총회 참석을 위해 여행증명서라도 발급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오사카 영사관 측은 “가족관계등록을 정리하지 않은 상태여서 여행증명서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앞서 구 변호사는 지난 6월 일본 긴키변호사회연합회 대표단으로 서울을 방문했고, 2005년에는 대학 졸업여행으로 서울에 온 적이 있다. 모두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았다. 구 변호사는 “설령 여행증명서 발급이 정부 재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수학여행은 되고 일본 변호사 대표로 참석하는 것은 안 된다는 논리는 부당하다”고 말했다. 외교부 측은 “여행증명서 발급은 정부 재량”이라고 밝혔다. 김철민 변호사는 “대부분의 조선적은 한국 법이 요구하는 것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지만, 한국 국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일본 법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 이범준 기자 ) ※ 조선적(朝鮮籍)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1945년 조국의 광복과 분단 이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과 그 자손 중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남북한 어느 족 국적도 선택하기를 거부하며 살고 있는 약 5만 여명으로 추정되는 일본 내 동포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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