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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자로 두 번째 월남땅 잠입하다
 
코리안보이스 기사입력  2010/11/28 [16:18]
월남서 돌아온 지도 어느 새 반년이 휘딱 지나갔다. 거리는 제6대 대통령 선거전이 무르익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게 없이 모두 들떠 있었다. 내 마음도 거리처럼 잔뜩 바람이 들어 몸뚱이만 서울에 있었지 마음은 더위에 늘어져 있는 야자수 그늘에 가 있었다.
 
  어느 날 머리도 식힐 겸 남산에 올라갔다. 그 때만 해도 하릴없는 사람들이 많아선 지, 아니면 워낙 정치열이 높은 국민이라 그런지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사람들로 빽빽했다. 대통령 선거 유세를 들으러 가는 인파였다. 사람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박정희 후보를 표독스럽게 공격하는 윤보선 후보의 유세를 듣고 있었다.그러나 나는 마음이 땅에 닿아 있지 않아선 지 연설 내용이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카랑카랑한 박대통령의 연설도 귀에 들어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들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얘기로만 들렸다. 하기는 유세를 들으러 왔다기 보다는 산 위에 올라가면 답답한 가슴이 조금이나마 뚫릴는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개미떼처럼 모여 있는 인파는 이른 바 선거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는 것 같았는데 나만 냉랭했다.

  산밑을 멀리 건너다보며 한눈을 팔고 있으려니 산 밑 필동에 있는 허연 수도 경비사령부가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박 중사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래 박중사를 만나보자. 지난번 양키물건 장사 때도 신세졌지만 한 번만 더 신세를 지자꾸나. 박중사라면 나를 월남으로 보내 줄 수 있을 것이다....

  박중사는 당시 수경사 20중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수경사가 제법 힘을 쓸 때라 별 볼 일 없는 나 같은 서민에게는 유일한 ‘빽’이기도 했다. 가기만 하면 한 다발 돈을 거머쥘 것만 같은데 월남까지 갈 방법이 없어 안절부절못하던 참에 대통령 선거가 길을 뚫어줄 줄은 몰랐다. 남산에 잘 올라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보내는 줄 테니까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내 원망 안 할 거지?”
  박중사는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더니 내 다짐부터 받았다.
  “보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박 중사가 무슨 하나님이냐. 그 나라 가서 일하는 것까지 책임지게?”
  “일이 문제가 아니라 전쟁중인 나라니까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어. 괜히 보내주고 나서 삐끗하면 가족들한테 원망 들을까봐 그러지.”
  “내가 언제 그런 거 저런 거 겁내는 거 봤어?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네, 원. 가게만 해 줘.”
  “정말 한번 해볼 테야? 비행기를 타는 것까지는 방법이 있어.”

  나는 박 중사의 도움을 받아 제2차 월남행을 결심했다. 어떤 방법이든지 가릴 것이 없었다. 그때까지의 나의 삶이란 게 방법을 골라잡을 만한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건 이미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기도 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면 몸이 부숴지더라도 일을 만들어야할 판이었다. 모든 것이 내게는 항상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에 방법의 옳고 그름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여권을 받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려울 때라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박중사는 부재자 투표용지를 월남까지 수송하게 되는데 슬쩍 태워주겠다고 했다. 정식으로 타는 것이 아니라 몰래 타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게 떠나버리고 나면 월남으로 갈 수 있는 길은 영영 막혀버릴 것 같았다. 

  “그래, 태워만 줘. 그 다음은 둔갑술을 쓰든지, 하여간 부딪쳐 보자고. 막말로 안 되면 돌아오지, 뭐.”

  박중사도 나처럼 성미가 불같이 급했다. 내 결심을 확인한지 사흘만에 다방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벌써 군복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다.

  “내일 새벽에 비행기가 뜨는데 오늘밤은 공항 근처 허름한 여관에서 자는 게 좋겠어. 늦지 않을래면 말이야. 어떤 놈들처럼 팔자가 좋아서 여객기 타고 할랑하게 여행가는 것도 아니고 이번 비행기 놓치면 다음 편이 또 있는 게 아니잖아.” 

  요즘처럼 김포공항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도 없게 자동차가 막히는 것은 아니지만 꼭두새벽에 나오느니 오히려 그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어딜 가든 복잡하게 짐 뭉치를 꾸려 가지고 다니는 성미도 아니었다. 물론 짐을 챙길 겨를도 없었지만 나는 치약과 칫솔만 가지고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김포공항 근처의 여관에서 밤을 샜다. 잠이 올리 없었다. 게다가 옆방에선 여인네 끙끙 앓는 소리도 들려오고, 취객들이 복도에서 떠들어대는 소리 때문에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공연히 가슴이 뛰고 전기 불빛이 눈동자를 찔렀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벼라별 생각이 다들었다.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을는지,  또 월남에선 자리를 잡을 수있을는지, 흡사 덮고 있는 이불이 걱정의 이불처럼 느껴졌다. 잠시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계급장 없는 군복차림으로 여관을 나선 나는 공항을 향해 걸어갔다. 새벽녘이라 그런지 피부에 와닿는 공기가 차가웠다. 으슬으슬 추웠다. 한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은근히 긴장이 됐다. 공항 정문 쪽으로 가다가 왼편으로 돌아 부천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지금은 주택이 꽉 들어차서 어디가 어딘지도 분간하기 어렵지만 그 때만 해도 활주로 바깥은 논밭이었다. 철조망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비상시에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있을 거라는 박중사 말을 되새기며 밭둑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계급장도 없는 군복을 입고 새벽부터 공항 울타리를 따라 걷는 나의 모습을 보고 혹시 누군가가 수상한 사람으로 몰아 신고를 할런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은근히 불안했다.
 
  한 1킬로미터쯤 걸어가자 철조망으로 된 문이 눈에 띄었다.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폭이었다. 박중사는 그 문앞에 서 있으면 사람이 데리러 온다고 일러주었었다. 그 앞에 서 있을 때 왠지 다리가 떨려오는 것 같았다. 약속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있었고 또 경비원에게 들켜 끌려가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나는 풀밭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바짝 귀를 세웠다. 잠시 후였다. 비행장을 경비하는 순찰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차가 접근할 때까지 그대로 쭈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다. 혹시 그 차가 약속된 차가 아닐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프차가 대여섯 발자국 앞 철조망 너머에 멈추더니 문이 열렸다. 군인 한 명이 내려와서 문쪽으로 다가왔다.
  “당신이 그 사람이오?”
  “네! 맞습니다.”

  그 사람이냐고 묻는 그 군인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랬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 군인은 철조망으로 다가와서 샛문에 매달려 있는 쇠불알만한 자물쇠를 철커덩 열어주었다. 이제 막 동이 터 오는 새벽이었다. 아직도 공항 주위에는 불빛이 훤하게 밝혀져 있었고 활주로 한쪽 끝에 군용 쌍발기 C-46 두 대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갑자기 어깨를 폈다. 박중사의 부탁을 받아 나를 데리러 왔다면 내가 꿇릴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박중사의 부탁을 들어주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흡사 상부로 부터 명령을 받고 비행기에 오르는 군인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떳떳이 트랩을 올랐다. 내가 탄 비행기 안에는 기장과 부기장 그리고 다른 다섯 사람을 포함하여 여덟명이 타고 있었다. 아마 기장이나 부기장 등 한두 명은 내가 비공식으로 탑승한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나머지 승무원들은 박중사의 빽으로 철조망을 통해 비행기에 올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계급장도 없는 군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특수임무를 띤 군속이나 아니면 어느 신문사의 특파원 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자 되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무사히 월남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내 한쪽 편에 박중사 말대로 부재자 투표용지가 담긴 것 같은 우편 행낭 자루가 여러개 실려 있었다. 김포를 떠난 뒤 두어 시간 지나자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코를 낮추고 내려앉은 곳은 오끼나와에 있는미공군 기지였다. 급유를 받고 있는지 아니면 정비를 하는지 꽤 지리한 시간이 흘렀다. 나는 한 일분이 아쉬운 심정이었지만 같이 탔던 군인들은 노닥거리면서 아까운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윽고 비행기가 다시 이륙하더니 너댓 시간이 지나 이번엔 마닐라에 도착했다. 역시 미공군 기지였는데 하루 저녁을 쉬고 다음 날 아침에 출발한다고 기장이 말했다. 하루 거리도 되지 않건만 군인들이어서 그런지 쉬엄쉬엄 늑장을 부리는 것 같았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도 혹시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기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지만 출입이 허용되었어도 마닐라 구경을 할 심적 여유가 없었다. 불안의 연속이었고, 하루빨리 월남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월남에 가면 누가 날 기다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이제나저제나 월남에 발을 디딜 때만 기다려지는 것이었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우리 일행은 활주로 끝에 나란히 서 있는 두 대의 수송기에 나눠 탑승했다.
  “이제 월남으로 가는 겁니까?”
  주머니에 남은 돈이라곤 10달러밖에 없었다. 어딘가에 또 기착을 한다면 소다 한병이라도 사먹어야 하는데 돈이 모자랄 것 같았다. 또 아까운 시간이 자꾸만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럼요.”

  내 좌석 옆에 앉아 있던 남자는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는 월남 땅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앞서 출발한 비행기가 하늘로 솟아오르자 내가 탄 C-46기도 털털거리며 활주로를 구르기 시작했다. 뒤뚱거리던 기체가 부웅-, 땅을 박차고 떠올랐다. 짙은 안개처럼 보이는 구름들이 창 밖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휙휙 지나갔다.

  기체가 요동치기 시작한 것은 그 때였다. 아주 순간적인 일이었다. 탑승자들이 기내에서 곤두박질을 쳤다.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흡사 차가 전복되는 것처럼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다. 이마가 까지는 정도로 그칠 사고가 아니었다. 사방에서 “어이쿠!” “억!” 하는 비명들이 들려왔다.
여기 저기서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제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소리를 질러댔다. 부기장이 객실 안으로 들어서더니 엔진이 고장났다며 다시 마닐라 공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항에 다시 돌아오자 모두들 다들 목숨을 건진 게 천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오늘은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 다시 미군 기지에서 하룻밤을 더 묶게되면 서로들 말문이 터져 이것 저것 물어보게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신분이 탈로날 것만 같았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 고장 수리가 안되어서 다른 비행기로 인계를 한다면 월남을 코앞에 두고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갈런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군인이었으므로 급할 것도 없고 기착한 곳이 미공군 기지였기 때문에 시설도 좋고 식사도 푸짐해서 휴양이라도 온 것 처럼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기지내 극장을 찾아 공짜 영화를 관람하며 불안감을 지우려 했었으나 허사였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얼마나 초조했던지 공연히 다리를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비행기는 그 다음날에도 수리되지 않았다. 불안을 억누르며 참을 수밖에.... 이틀을 더 보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이틀씩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사고 비행기를 수리중이란 뜻도 된다 싶어서 다소 안심이 되기도 했다. 여기까지 타고 온 비행기를 그대로 타게 된다면 인원파악을 새로 할 까닭이 없었다. 그만큼 내신분이 탄로날 확률이 줄어드는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활주로 끝에 서 있던 C-46기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을 하곤 했다.

 딱 만 이틀이 지난 아침 나절, 같은 비행기를 탔던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보자 결국은 기체 수리를 못하고 서울에서 다른 비행기를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나도 부지런히 짐을 챙겨들고 군인들을 따라 나섰다. 과연 활주로에는 서울서 새로 보내왔다는 엔진이 네 개나 달린 커다란 비행기가 서 있었다. 다소 불안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탑승자들이 종전 두 대의 비행기에 탑승했던 일행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저으기 마음이 놓였다.

  나는 일행을 따라 비행기에 올랐다. 다들 자리에 앉아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는 것을 보고는 그 와중에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질겁한다더니 한 번 사고가 나자 비행기 타는 것이 겁나는 모양이었다. 두 대에 나눠탔었던 탑승자들이 한비행기를 타게되자 여기저기서 수인사들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비행기가 예상외로 컸다.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자리에 앉고도 남은 자리가 많을 정도로 널직했다. 엔진고장이 난 C-46기와는 딴판이었다. 우선 고급스러웠다. 겉에서 볼 땐 군용기가 틀림없었는데 좌석이 푹신푹신하고 내장도 잘 돼 있었다.

  이윽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스르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보다도 인원점검을 하지 않는 것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드디어 아무런 사고 없이 월남으로 갈 수 있게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비행기가 이내 하늘 높이 떠올라 안정된 고도를 유지한 듯 흔들림이 없어졌다. 한숨을 돌리고 나자 주위에 있는 것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쪽 조종석 뒤 천장에 붙여놓은 글씨가 나의 시선을 휘어잡은 것은 그 때였다.

  - 대통령 전용기.
  대통령만 탄다는 비행기였다. 이 강신목이가 대통령 전용기를 타다니! 꿈 같은 일이었다. 나는 갑자기 기분이 얼얼해지면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통령 전용기가 틀림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수근대는 소리도 들렸다. 그 사람들도 대통령 전용기는 처음 타보는 모양이었다. 부재자 투표용지를 싣고간다더니 사안이 사안이었던 만큼 전용기까지 동원한 모양이었다.
나중에 부재자 투표 개표 결과 90% 이상이 박정희 후보표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대통령 전용기까지 동원하여 만든 표인데 오죽하겠는가”라고 중얼거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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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1/28 [16:18]  최종편집: ⓒ honamin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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